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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전시 <환각-해체된 풍경과 격리된 표상>(2017 사이아트 도큐먼트 선정작가) 사이아트연구소 평론글 이승훈(국문) 등록일 2017.11.26 22:53
글쓴이 박준수 조회/추천 1494/3

각성과 혼돈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보기 혹은 그리기



이미지로 드러나게 되는 회화는 물질로서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입체나 공간을 기반으로 한 조형예술분야보다 실체 이면과 본질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방식일 것이다. 물론 회화 역시 채색재료나 채색의 지지체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물질적 측면을 일부 보여줄 수 있겠지만 평평한 면 위에서의 이미지는 즉물적 감각과는 달리 이미지가 가져오는 감각은 물질 너머를 향하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박준수 작가는 동양화 혹은 한국화로도 지칭되는 분야를 전공하였다. 그러나 그의 전공이 무엇인가와 상관없이 그가 작업하는 과정이나 그의 작업 태도를 보면 어떤 면에서든 그가 동양적 지평 위에서 자신의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현대미술에서 동양화와 서양화를 구분하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그 구분 자체가 불필요해 보인다. 후기현대라는 시대적 상황의 미술에서는 모든 것이 혼성적으로 나타나기에 재료나 기법으로 구분하는 것은 유의미한 구별법이 될 수 없다. 내용적인 면을 보아도 역시 어디까지가 동양적이고 어디까지가 서양적인가를 구분하기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박준수 작가의 작업은 '동양적 사유'가 '어떤 것'인가와 그로부터의 '회화하기'는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는 박준수 작가가 한지나 분채 같은 재료를 즐겨 사용한다거나 특정한 동양화의 기법을 사용하는 한다는 점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작업이 동양적이라는 점을 설명하기엔 부차적 이유에 불과하다. 그의 회화가 동양적인 것의 핵심은 오히려 그가 서구의 그것과는 다른 사유방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가 서구와 다른 사유를 하고 있음과 세계를 보는 시각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그의 작업 진행과정과 시각적 결과물 등을 보면 여러 지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시각은 근본적으로 서구의 주체 타자 혹은 주체 객체와 같은 이분법적 분리 방식에서 빗겨나 있다. 또한 작가는 서구의 전통 회화에서처럼 그가 관찰하는 대상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오히려 작가는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볼 때 물질이 아니라 서로 관계하는 방식으로부터 사물에 대한 지각을 시작하고 그림을 그려내는 행위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가 전시 주제로 제시한 것은 시각적 착각으로서의 일루전(illusion)으로서의 환각(幻覺)이 아니라 감각기관에 어떠한 자극이 없어도 사물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환각(hallucination)이다. 이를 굳이 신체적 감각과 연관시켜 말한다면 물질을 초월한 감각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에서 이미지들은 흔히 다중적으로 드러난다. 여기서는 사물을 인식하는 주체와 보여지는 것으로 간주되는 객체 그리고 그 양측이 연결된 방식 혹은 존재 방식에 대한 메타적 인지를 포함하게 된다. 작가는 이를 유식사상(唯識思想)으로부터 인용하여 견분(見分)과 상분(相分) 그리고 자증분(自證分)이라 하였다. 그렇기에 작가는 본질적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이를 그려내는 데에는 물리 화학적 반응이나 생체적 시감각과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몸의 눈이 있다면 같은 방식으로 마음의 눈도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에서는 원근법적 투시공간이나 공간을 표시하는 명암법 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찰라적 순간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감각과 물질과 정신을 포함한 메타 차원에서의 거시적 시각과 감각의 세계를 초월한 지각이 열려 있어야 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서구적 시각 아래 물질에 심취해 있고 몸의 감각에 매몰되어 정신으로부터의 감각이 무뎌져 있을 수 있다. 또 이러한 작업 태도를 신비주의적 교의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몸의 감각이 아니라 마음의 감각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박준수 작가의 작업에 다가간다면 서구 전통의 시각이 발견해내지 못했던 시각 세계와 존재적 위치에 대한 단초를 발견해 낼 수 있을는지 모른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는 다원적 시각이 필요한 이 시대라면 누구든 충분히 그러한 태도를 갖는 것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각에 대한 사고를 전환해서 볼 수 있다면, 그 작은 계기가 서구의 과학주의적 세계관이 발견해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커튼을 열어젖힐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현대미술의 경향이나 현대사회의 상황과 상관없이 박준수 작가는 시선을 인간의 내부로 돌려 물리적 자극이 아닌 마음의 자극에서 각성하게 되는 환각의 지점 바로 그 경계 지점으로부터 자아를 그리고 세계를 발견해내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흔적을 회화로 남겨 놓는다. 우리는 그의 회화에서 어떤 특정한 것을 보는 것에 실패하거나 기대하는 바에 만족하지 못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마음의 세계가 보고자 했던 것처럼 그러한 시야를 만날 수 있게 된다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감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전시장은 그러한 마음에 대해서 알게 되고 만나게 되는 장소가 되며 또 보는 장소가 될 것이다.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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